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과 나(드라마) (문단 편집) === 오류 === 1화에서 [[세조(조선)|세조]]가 죽기 직전 본인의 아내인 [[정희왕후]]를 [[중전]]이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창작물의 반영 오류|오류]]이다. 세조는 죽기 하루 전에 이미 아들 [[예종(조선)|예종]]에게 양위했고, 왕위에서 물러나 [[상왕]]이 되었기 때문에 [[정희왕후]]는 중전이 아닌 [[대비]]가 된다. 다만 세조는 양위한 지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보통 이성계나 이방원과 달리 상왕이 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간과하기도 한다. 시대적 배경이 [[15세기]] 조선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의상들은 죄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에 나온 의상들이다. 여인들이 주로 입은 저고리의 길이가 19세기 수준으로 짧거나[* [[임진왜란]] 이후부터 저고리가 짧아지기 시작했으며, 그 전까지는 주로 허리까지 다 감싸매는 장저고리를 많이 입었다. 게다가 17~18세기 때만 하더라도 지금의 저고리보다는 꽤 긴 편이었다.], 궁중 여인들이 [[당의]]를 입는다거나...[* 조선시대 때 당의를 입기 시작한 시기는 [[광해군]] 재위 기간으로 대략 추정되며, 그 전까지는 궁중에서 장저고리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왕비의 대례복마저 '''[[대한제국]]''' 시기에 나온 심청색 적의에 대수머리 형태로 나온다.[*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조선 전기는 명나라가 직접 하사한 칠적관(七翟冠)과 대삼(大衫)을 대례복으로 주로 입었다. ] --[[김재형(PD)|감독]]의 전작이 무려 역사 충실도가 높기로 유명했던 [[용의 눈물]]인데--[* 이 당시 복식의 형태를 잘 재현한 사극으로는 [[왕과 비]]와 [[용의 눈물]], [[대왕세종]]이 있다.] 게다가 궁중 여인들의 가체인 어여머리도 기존 사극보다 퓨전 사극에서나 볼법한 불균형에 삐뚤빼뚤 모양이었기 때문에 시청자들로부터 기괴해보인다는 평도 많이 받았다. 정작 사극팬들로부터 어여머리가 가장 예쁘고 역사 충실도도 가장 높다고 평가되는 [[여인천하]][* 다만 왕비의 대례복이 조선 후기식으로 나오는 [[창작물의 반영 오류|오류]]가 있었다.]가 같은 감독이 연출했던 드라마란 사실을 생각하면 엄청난 아이러니하다. 오히려 이후에 방영된 [[대풍수]]에 나온 의상들 중에 본작에 어울릴 법한 것들이 많다. 대풍수는 작품 자체는 졸작 취급을 받는 것과 별개로, 시대적 배경이 같은 KBS 사극들만큼은 아니어도 대체로 여말선초 의상·배경 연출이 세심한 편이고 특히 SBS 사극 최초로 칠적관이 나온 작품이기도 하다. || [[파일:여인천하어여머리.jpg|width=350&height=350]] || [[파일:왕과나어여머리.jpg|width=350&height=350]] || || [[여인천하]]의 [[문정왕후]] || 왕과 나의 [[인수대비]] || 참고로 왕과 나에서 선보인 어여머리 가체는 몇년 뒤 [[SBS|같은 방송국]] 사극 [[뿌리깊은 나무(SBS)|뿌리깊은 나무]]에서 [[소헌왕후]]의 가체로 재활용되었다. || [[파일:명나라 군왕비 대삼 영락3년제 둥동궁관복.jpg |width=370&height=500]] || [[파일:왕과나중전책봉식.jpg|width=370&height=500]] || || 명나라 복식사자료집 <대명의관>에서 묘사된 명나라 군왕비와 조선 초기 왕비의 대례복이었던 대삼(大衫)과 칠적관(七翟冠). [[명나라]]에서 직접 하사받은 대례복이었으며, [[임진왜란]]때까지 대례복으로 활용되었다.[* 이전 문서에는 [[정도전(드라마)|정도전]]의 [[신덕왕후(정도전)|신덕왕후]]의 대례복을 착용한 모습의 사진이 참고자료로 올라왔지만 엄밀히 말해서 다른 대례복이다. 신덕왕후가 착용한 심청색 대례복은 적의(翟衣)와 칠휘이봉관(七翬二鳳冠)이었고 1403년 이후로는 칠적관과 대삼으로 대례복이 변경된다.] || 왕과 나에 나온 대수머리와 심청색 적의(翟衣). 이렇게 입기 시작한 때는 대한제국 이후이므로 역사 충실도가 낮다. || || [[파일:대왕세종이윤지.jpg|width=100%]] || [[파일:왕과나박보영.jpg|width=99.5%]] || || [[KBS]] [[대왕 세종]].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저고리 길이가 허리까지 닿을 만큼 긴 편이었다. || [[SBS]] 왕과나. 이 정도 길이의 저고리는 19세기 조선 말기에 나온다. || 시대적 배경은 같은 15세기 조선 초기이지만[* 다만 같은 15세기여도 [[대왕 세종]]이 [[왕과 나]]보다 앞서 있다. 그래도 바로 후대이므로 크게 차이는 나지 않는 편.] [[대왕 세종]]에 등장한 저고리의 길이가 훨씬 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